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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4.17 30년만에 극장 개봉 '파업전야'...그리고 장동홍 감독 by 미아리홍
  2. 2019.04.16 노트르담...그리고 남대문 by 미아리홍
  3. 2007.08.10 뒤늦게 알게된 스트리트 싱어 연영석[version 1.0] 1 by 미아리홍
  4. 2007.07.29 브이( V)를 기억하십니까? 1 by 미아리홍
  5. 2007.04.09 2005년 여름 아시아의 중심 by 미아리홍

1990년 봄, 전국을 떠들썩 하게 만든 '파업전야'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첫 노동영화, 독립영화의 전설. 따라 붙는 수식어가 많지요. 당시에는 극장에 영화를 걸려면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심의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노동자들의 현실을 정면에서 고발했던 까닭입니다. 정부는 '파업전야'를 불법 영화로 규정하고 탄압합니다. 이 작품을 상영하려는 극장주를 고발하고, 영사기와 필름을 압수하기도 합니다. 또 경찰력을 동원해 상영장소를 원천 봉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파업전야는 전국 대학가를 돌며 학생회관, 체육관 등에서 상영을 강행했고,  비공식적으로 관객 30만명 이상을 기록합니다.

1000만 영화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30만이 뭐 그리 대수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흥행 대박 수준입니다. 그즈음 연도별 한국 영화 흥행 1위를 살펴보면 서울 기준으로 1986년 어우동 47만 9000명, 1987년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26만명, 1988년 매춘 43만 2000명, 1989년 서울무지개 26만 1000명, 1990년 장군의 아들 67만 8000명 이라고 합니다. 특히 1990년에는 장군의 아들에 이어 남부군 32만명,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31만명, 나의 사랑 나의 신부 18만 명이 뒤를 이었습니다.  

1990년대 중후반까지도 대학 신입생이 되면 노이즈가 심한 비디오 테이프로 '파업전야'를 보는 게 통과 의례 이기도 했는데요.  요즘 이었다면 VOD로도 대박이 났을 것 같습니다. 

'파업전야'는 영화 운동을 하는 젊은 청춘들이 뭉친 장산곶매라는 단체에서 만들었습니다.  감독 크레딧에 무려 4명이나 이름을 올렸습니다. 장동홍 이재구 이은기 장윤현 감독입니다. 당시 유행한 문화 창작 방법론(집단 창작)에 따른 결과라고 하는데요(정확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류의 러시아식 연출 기법을 가미했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굉장히 할리우드 적인 연출 기법으로 영화가 연출되어 있습니다. 1992년 인기 드라마 '질투'에서 360도 회전 엔딩신이 유명한데, '파업전야'는 이미 2년 앞서 클라이막스 장면에 360도 회전 기법을 사용합니다. 

 

오는 5월 1일 노동절에 4K 작업으로 영상과 음향을 업그레이드 한 '파업전야'가 극장에서 정식 개봉한다고 합니다. 많은 수의 스크린은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오랜 세월을 건너 뛰어 스크린을 통해 이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게 기분이 참 묘하네요. (저는 비디오 세대입니다.) '파업전야'의 감독 네 분 중 연출 지분(?)이 가장 많다고 하는 장동홍 감독님을 9년 전에 만나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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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홍 감독

아주 징글징글한 사람이 있다. 굉장히 재수 없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이익을 위해 무슨 짓이라도 서슴지 않고, 손해 보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인간이다. 그렇다고 해도 젊은 시절에는 꿈과 이상을 갖고 사회 변혁을 위해 스크럼을 짜지 않았을까? 도대체 왜 변하게 됐을까. 이런 사람을 한꺼풀 벗겨보고, 걸쭉한 이야기와 행동을 보태면 재미있지 않을까. 영화 ‘이웃집 남자’는 그렇게 출발했다.

 

제작비를 투자받는 게 쉽지 않았다. 영화가 엎어지는 데는 수만 가지 이유가 있지 않은가. 위기도 있었다. 2007년 영화진흥위원회 예술영화 제작지원 작품으로 뽑히며 간신히 숨통이 트였다. 지난해 여름 촬영에 돌입했다. 한 달 동안 17회차로 촬영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18일 마침내 개봉했다. 장동홍(47) 감독이 오랜 친구이자 ‘고래’를 쓴 소설가인 천명관 작가와 술잔을 나누며 의기투합한 지 5년만이다.

‘이웃집 남자’는 오로지 돈만이 지배하는 요즘 세상에 ‘제대로’ 적응해 살아가는 중년의 부동산 중개업자 상수(윤제문)를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먼저 빼앗지 않으면 누군가 빼앗아 가는 게 자본주의 법칙이라고 누누이 강조하는 상수는 그러나, 마냥 밉지만은 않다. 연민도 느껴진다. 장 감독은 “‘이웃집 남자’는 주연 배우에 초점을 맞춘 캐릭터 영화라 복합적인 인물인 상수는 연기자라면 탐을 낼 만한 역할”이라면서 “윤제문이 제격이라 판단됐고, 그의 매력이 첨가되며 원래 시나리오와는 달리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지는 캐릭터로 재탄생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30대 중반 이상의 남자 관객이 공감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시사회 때 20대 여성 관객이 “너무 잘 봤다”며 악수를 청해 내심 깜짝 놀랐다는 장 감독은 ‘이웃집 남자’가 자신에게 정말 행운 같은 작품이라고 했다. 오로지 영진위 지원금으로 만들어 제작비가 부족했으나 내용적으로는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았다는 것.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다. 제작비 제약으로 A4지 60쪽에 달하는 시나리오를 40쪽 정도로 줄여야 했기 때문이다.

“상수가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그 전에 손에 피를 세게 묻히는 장면이 필요했어요. 영화에서는 생략됐지만 용역 깡패를 동원해 리조트 개발을 반대하는 시위대를 쓸어버리는 장면을 찍으려고 했지요. 깡패들이 시위대를 덮치는 순간 상수의 얼굴을 클로즈업하고 소리만 들려주는 식으로요. 일그러지는 상수의 얼굴에서 스펙터클을 찾고 싶었는데 안타깝죠.”

장 감독이 ‘이웃집 남자’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변한 것은 시대 상황이 아니라 너 자신”이라고 술에 취해 상수에게 한소리하는 경호(박혁권)의 말에서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다. 장 감독은 ‘영화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지 말라. 관객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우체국에 가서 전보를 쳐라’라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말을 꺼내 놓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한두마디로 정의하기가 어렵네요. 누구라도 선한 가치를 추구하고 악한 것을 배격하며 약자 편에 서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던 젊은 시절이 있었을 것 같아요. 세월이 지나 그런 것이 없어졌다면 타락했다고 볼 수 있죠. 그것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 감독 자신은 변하지 않았을까. “레이몬드 카버를 좋아해요. 블루칼라 출신으로 뒤늦게 작가가 됐죠. 그 양반이 굽히지 않으면 부러진다. 동시에, 실컷 굽히고서도 부러질 수 있다고 했어요. 적어도 제 생각과 반하는 작품은 만들지 않을 겁니다.”

장동홍 감독

장 감독은 이번 작품을 스크린에 걸기까지 정말 먼 길을 돌아왔다. 서울예전 영화과 재학 시절 사회 현실을 담은 단편 ‘노란 깃발’과 ‘그날이 오면’을 만들었고, 대학가 순회 상영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그가 한양대, 중앙대 영화 친구들과 함께 만든 그룹이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다. 그리고 ‘오! 꿈의 나라’와 ‘파업전야’를 세상에 선물했다. 장산곶매에서 함께한 사람들이 홍기선·장윤현·이은·공수창 감독 등으로 모두 제도권에서 성과를 냈다. 장 감독도 1998년 김현주와 박용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멜로 영화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으로 상업 영화에 도전했지만, 크게 깨졌다. 충무로 영화를 처음 하면서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게 패착이었다고 했다.

“여러 요소에 멜로가 섞이면 몰라도 멜로 중심의 이야기는 제게 맞지 않았는데 그때는 그것을 모르고 덤벼들었죠. 그 뒤로 멜로는 항상 겁나요. 하하하. 빨리 작품을 다시 만들어 성과를 내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어요. 시나리오 한 편을 쓰면 1년이 훌쩍 지나갔죠. 스포츠 휴먼드라마 ‘아이언맨’이라는 작품은 중간에 중단되기도 했죠. 먹고살기 위해 아르바이트 삼아 방송 쪽 일을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 새 작품을 내놓기까지 12년이나 걸렸네요.”

다음 작품을 너무 오래 기다리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건네자, 장 감독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빛냈다. “이번 작품에는 제 주장이 많이 들어간 것 같습니다. 다음번엔 ‘이웃집 남자’보다 조금 덜 날이 선, 좀 더 대중적인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처럼 감동과 함께 인생의 깊이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들려고 합니다.”

 

icarus@seoul.co.kr

Posted by 미아리홍

정말 우연한 기회에 접할 수 있었던 노트르담.
평생 다시 가볼 기회가 있을까 싶다.

불타는 노트르담을 바라보는 프랑스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몇 년 전 남대문이 불타는 걸 늦은 밤까지 지켜보던 그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그리고 저녁 방송 메인뉴스까지 대대적으로 노트르담 화재를 다루는 것을 보면
프랑스의 유산이 아니라 세계의 유산이 분명한 것 같다.
대성당들의 시대가....

ⓒmiarihong

 

ⓒmiarihong

 

ⓒmiarihong

 

ⓒmiarihong

 

Posted by 미아리홍
사실 저는 민중가요를 좋아합니다. 처절한 또는 피범벅인 노랫말,민중가요에 따르는 팔뚝질

때문에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대학시절 민중가요에 둘러싸여

지내신 분들도 말이죠.애써 귀를 닫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잘 찾아보고 들어보면

정말 아름다운 노래도 많습니다.저 개인적으로는 울컥한 노래들을 좋아합니다.

바로 이 양반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울컥함을

저에게 던져준 양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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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다고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어색하다며 허허 웃던 영석이형.



 2006년 봄 한국대중음악시상식에 갔었을 때
 
바로 이 양반이 특별상을 받고는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죠. 수상 소감 멘트와

그 노래는 '아 내 심장이 다시 뛰는 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했습니다.

그 노래는 '간절히'라는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는 이글을 버전 2.0]으로 업그레이드할 때 올려 보겠습니다.

일단 가장 유명했던 노래를 들려드립니다.

코리안 드림

그 다음날로 연락처를 알아네 인터뷰 약속을 잡았죠.

홍대 인근 자그마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연영석씨는 저에겐 그야말로

신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늦깎이로 음악에 입문했던 과정이나

삶을 바라보는 시선,사는 이야기 등등 이야기는 계속 흘렀죠.

스튜디오에서의 만남은 쏘주 자리로 까지 이어졌습니다.

약 2개월 지나서 다른 공연에서 우연히 이 양반을 마주쳤습니다. 그 공연에

왔었던 이 양반이 자신의 게스트 공연을 끝내고 객석에 와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지금도 그 어느 곳에서 노래를 하고 있겠죠.

혹시 길을 가시다가 이 양반을 만나면 응원 좀 해주세요..



“사회 어두울수록 더 노래할 것”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 받은 연영석

“끊임없이 창작 욕구를 만들어 주는 어두운 사회에 감사합니다. 사회가 어두울수록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영광스러운 수상 순간에 터져 나온 소감치곤 사뭇 느낌이
다르다.‘노래하는 문화노동자’ 연영석(39)이 최근 열린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던진 말이다. 만장일치로 특별상을 받았다.

대중성보다는 음악성을 중요시하는 이 시상식에서 그가 특별상을 받았던 까닭은
민중가요 30년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확인시켜주는 결과물로 갈채를 받았기 때문.

“아직도 민중가요가 있나?”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연영석의, 어깻죽지를
들썩이게 하는 흥겨운 가락과 사회 구석구석을 향해 외치는 직설적인 노랫말을 접해보라고
하고 싶다. 민중가요의 생생한 들숨과 날숨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조소 전공하다 서른 넘어 민중가요 투신

“음악에 뛰어든 8년의 시간을 이렇게 위로받아서 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미안하기도
하고요. 여러 곳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사회 활동가들의 지친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죠.”

지난 17일 서울 홍익대 근처에서 연영석을 만났다. 집회 현장과 대학 행사가 주된 라이브
무대인 그가 내뱉은 첫 마디는 주위에 대한 미안함이다.

원래 조소를 전공했던 미술학도였고, 대학을 졸업한 뒤 노동미술운동에 뛰어들었다.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3년, 문화예술생산자연합에서 함께 했던 록밴드 메이데이에게
‘전선은 있다’ 등의 가사를 써주면서부터. 당시엔 기타를 칠 줄도 몰랐다. 고단했던
자신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 흥얼거렸던 구절들을 후배들에게 코드를 물어가며, 기타를
배워가며 노래로 완성시켰다. 그렇게 만들었던 ‘라면’ 등을 98년 1집 ‘돼지다이어트’에 담아
내놓으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선 말렸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늦깎이로 음악에 뛰어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영석은 2집 ‘공장’(2001년),3집 ‘숨’(2005년)을 들고 노숙자,
철거민, 해고 노동자, 이주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곁에서 노래 부르기를 이어왔다.

철거민·실업자등 곁에서 노래

그가 뮤지션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늦깎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연주 실력과 빼어난
창작력에도 있으나, 무엇보다 삶에 대한 진정성이 고스란히 노래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거의 밥 같은 느낌이에요. 라이브로 밴드와, 관객과 소통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어요.
 늦게 시작했지만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정말 잘하고 싶어요.”라는 말에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음악은 밥같은 것”… 삶의 진정성 담겨

그는 민중가요 또는 노동가요가 집회 공간에서만 쓰여지는 ‘기능성’ 음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민중이, 대중이 갖고 있는 내면의 감정, 삶의 호흡과 에너지를 울리게 하는 음악이라는 설명.
80∼90년대와는 상황이 달라져 자기와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 과분한 상을 받기도 했지만
 민중가요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다. 자본과 상업 논리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어 작은 것은 존재하기가 힘든 요즘, 주류에서 외면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반영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언젠가 연영석은 노래 부르기를 멈추게 될지 모른다.
물론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없어져야 한다는 점이 전제로 깔려있다.
“제 노래 가운데 많은 부분은 사실 없어져야 해요.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 밝아진다면 말이죠.
언제 그런 날이 올까요?”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기사일자 : 2006-03-21    26 면

Posted by 미아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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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인터넷을 돌아다니다보니까,1980년 중반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SF 미니시리즈 브이(V)의 속편이 2008년 방영을 예정으로 제작되고 있다는 기사가

눈에 띄더군요.

속편 제목은 "V: The Second Generation"입니다.

저도 국민학교 때 정말 열심히 이 드라마를 봤던 터라 반가운 마음이 앞섭니다.

당시 드라마로는 수준급인 특수효과와

외계인 얼굴을 쥐어 뜯으면 파충류의 피부가 드러나고,특이 다이아나 역을 맡은 제인 배들러

가  하얀 쥐를 꿀꺽 삼키던 모습 등등 기억나는 장면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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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날 외계인의 비행 선단이 찾아와 세계 곳곳 하늘을 점령하죠.

친구로서 선진화된 외계 문명을 전수하기 위해 왔다는 이넘들을 지구인들은

처음에는 열렬하게 환영하는데 알고보니 이들은 사실 지구를  식탁에 올리기 위해

침략하러 왔고 인간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가면 아래는 파충류였다는 거죠.

마크 싱어가 연기한 마이크 도노반이 비행 선단에 잠입취재하러 갔다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되고 쫓기다가 레지스탕스를 만나게 되고 힘을 모아

이들을 쫓아댄다는 내용입니다.재미있는 것은 외계인 중에서도 좋은 외계인이 있어서

같이 레지스탕스 편에 서서 저항한다는 거죠.로버트 잉글런드가 맡았던 윌리 같은 캐릭터가

대표적입니다.로버트 잉글런드는 공포영화 나이트메어에서 프레디를 연기했던 배우로 유명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유순한 캐릭터를 보여줍니다.

결말에 대해서도 이렇쿵 저러쿵 소문이 많았죠..알고보니 마이크 도노반의 꿈이었다더라..

기다 아니다....이런 말다툼들...

브이는...

모르긴 몰라도 시청률이 엄청났을 겁니다.

1984년 미국에서 제작돼 1985년 즈음 국내에서도 방영됐으니 아마 지금 20대 후반 연배의 분

들도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인터넷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으니 원작을 연출했던 프로듀서 케네스 존슨

가 속편에 대한 소설을 올해 출판하고 2008년 방영을 목표로 드라마로 제작하는 중이라고

하네요.

환갑이 코 앞인 마크 싱어(48년생)나 파충류 언니 제인 배들러(53년생) 등등 1984년 멤버들이

대거 뭉친다고 하니 어떤 모양새로 등장하게 될지 정말 궁급합니다.

마크 싱어 공식 홈페이지 필모그래피에 'v-the second generation'이 나와 있는 것을 보면

이들의 출연은 사실일 것 같습니다.

환갑이 다 된 마크 싱어 아저씨가 액션을 펼친다기 보다는 외계인의 재침략에 대항하는 대빵

으로 나오고 젊은 선수들이 레지스탕스의 주력부대로 나오지 않을까요?

참고로 마크 싱어의 과거와 현재를 보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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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V에 출연할 당시의 마크 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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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이 자글자글한..아마도 2006년도 사진인 듯


아...마크 싱어의 모습을 보니 쉰 살이 훌쩍 넘은 제인 배들러 누님이

어케 변했을지는 정말 상상하기 싫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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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모습인듯합니다.


나름 좋아했던 줄리엣 박사(페이 그랜트)의 모습도 한 컷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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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청초하던 모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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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됐습니다.--;;



어쨌든 새로운 모습의 V가 돌아온다고 하니 기다려지는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그래도  브이가 잘 기억나지 않으신다면

클릭!

http://www.youtube.com/watch?v=lr7ZxQcgJ24

http://www.youtube.com/watch?v=FOtSUGjXjdA

http://www.youtube.com/watch?v=bpY2B57PMQ4







 

Posted by 미아리홍

김아중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요즘 한창 인기 상한가를 치고 있는 양반입니다.물론 그 양반은 저를 만난 기억이 없을 겁니다.수많은 인터뷰어 가운데 한 명에 불과하니까요.그것도 단체 기자간담회였죠.MBC 수목 드라마였던 것으로 기억납니다.제목이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였던 것 같습니다.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최강희와 심지호(이름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였습니다.김민종도 거의 조연급으로 나왔죠.김아중은 심지호가 원래 좋아하던 캐릭터였는데 이 양반은 김민종을 해바라기하는 머~대충 그렇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 구조였습니다.2005년 여름이었는데요,머 그 때도 김아중은 스타아니었냐고 반문을 하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지금의 10분의 1도 안됐을 겁니다.예전에 김아중에 대해 썼던 제일 처음 기사가 옆구리 걸,싸바걸(서지혜) 카멜레온걸(장희진)을 묶어 쓴 것인데 이 가운데 김아중이 톱스타로 떠올랐네요.어쨌든 MBC  경영센터에서 있었던 간담회에서는 김아중은 그다지 초점이 아니었습니다.드라마 간담회는 대개의 경우 예고편 영상을 본 뒤 제작진들이 드라마 전반적인 것에 대해 설명하고 출연진 소감 한 마디씩 듣고 출연진을 2~3개 조로 나눠 세부 인터뷰를 하는 순으로 돌아갑니다.당시 김아중은 김민종과 한 조였는데 대개 질문은 김민종에게 쏠렸죠.
질문 한 개가 주어지면 그렇게 좋아하며 답을 하던 김아중의 모습이 떠오릅니다.아마도
이제는 어디를 가도 귀찮을 정도로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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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여름 아시아의 중심
이하 내용은 김아중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방송+음악을 담당할 때 연예인 만나니까 정말 좋겠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스포츠 담당과 비슷한 경우입니다.하지만 첫 느낌이 그럴 뿐이지 그 느낌은 금방 퇴색합니다.
메니저에게 안하무인으로 하대 하는 젊은 연기자를 봤을 때 TV 화면에서 보던 그 사람이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을 얻습니다.다른 드라마 다른 배역 다른 배우인데도 공장에서 제품을 찍어내듯 앵무새 처럼 답이 돌아올 때 허탈하기만 합니다. 예를 들면 이번 출연 소감은? 이번 시나리오를 받아보자마자 너무 재미있어서 단번에 오케이했죠,감독님이 너무 좋고요~현장이 너무 가족적인 분위기에요.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아요~..
2~3번 정도 간담회에 다녀오면 질문을 하지 않아도 답을 아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또 하나 수많은 연예기사들이 넘쳐나지만 실제로 해당 연기자 또는 가수 등이 직접 이야기한 것인지 아닌지는 넌즈시 들여다봐야 합니다.대개 매니저 입을 통해서 나오고 기사화되는 경우가 다반사 입니다.유명한 연예인분들은 너무 바쁘셔서 대개 취재 상대를 잘 해주지 않습니다.제가 그쪽을 담당할 때는 젊은 신인급 연기자들에게도 그런 물림이 내려오는 경우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습니다.대형 매니지먼트 사일수록 인터뷰에 대해서 요구하는 게 많죠.이것은 묻지 마라 저것도 묻지마라 하다보면 정말 물어볼 말이 없어지기도 합니다.약속은 이리저리 깨고 미루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실제 제가 겪은 일입니다만 한 유명 연기자를 인터뷰하기 위해 5~6시간 이상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그러나 인터뷰는 15분도 못하고 끝났습니다.
TV 카메라가 있으면 분위기가 좀 달라집니다.TV 앞에서는 생긋생긋 웃다가도 볼펜 기자들이 다가서면 얼굴이 굳어지는 분도 많습니다.물론 대다수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일부 연예인들이 그렇다는 이야기 입니다. 대개 한 번에 인터뷰를 치르고 치워버리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양반들도 많습니다.기자는 반대 입장입니다.단독으로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모두 해보고 싶은 게 욕심이죠.
각설하고 1년 반 조금 넘게 연예 담당을 하며 느낀 점은 모두 솔직해졌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Posted by 미아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