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우영 화백 2주기를 맞이하여
지난해 문화부에서 근무할 당시에는 개인적으로 만화에도 관심이 많았던 터라 1주기 관련 나름대로 열심히 취재해서 기사를 썼습니다.올해에는 2주기가 다가 오지만 다소 조용한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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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3일자 서울신문]
“이번 추모제를 통해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지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팬들이 함께 웃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만화 ‘삼국지’‘수호지’‘임꺽정’‘일지매’‘초한지’…. 서민 정서가 듬뿍 담긴 그의 해학과 풍자 덕분에 무릎을 탁 치며 웃어보지 않은 대한민국 사람이 어디 있으랴. 지난해 4월25일 귀천(歸天)한 고우영 화백의 삶과 작품들이 1주기를 맞아 팬 곁으로 찾아온다.‘고우영 추모제-나의 삶, 나의 만화’가 열리는 것. 전시회 형식을 띤 국내 만화 작가의 추모제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 화백의 아들 성언,성우(왼쪽부터)
●21일부터 4개월 동안 전시회 형식 추모제
21일(일반 공개는 22일부터)부터 10일 동안 한국일보 갤러리에서, 새달 1일부터 부천만화정보센터 만화박물관으로 옮겨져 4개월 동안 계속된다. 올 초부터 추모제를 준비하고 있는 고 화백의 아들 성우(43)·성언(37)씨를 만나러 경기도 일산 ‘고우영 화실’을 찾았다. 성언씨는 2002년 고 화백이 대장암으로 고생할 때 미국 디자인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와 부친의 작품 활동을 도왔다. 역시 공업 디자인 분야에서 일하던 성우씨는 지난해 화실에 합류했다. 문을 열자마자 고 화백의 생애가 담겨 있을 종이 상자 수십 개가 눈에 들어왔다.“아버지와 가까웠던 지인들을 모시고 소주파티나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런 좋은 기회를 마련하게 됐네요.”
어려서, 그리고 젊은 시절에는 외려 아버지 작품을 자주 접하지 못했다. 학업에다, 군대에다, 유학에다 뭐가 그리 바빴는지 모른다.“50년 동안 쌓인 자료를 정리하다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해엔 제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나왔던 ‘80일간 세계일주’ 복간 작업을 하며 채색을 맡았었는데 그게 아버지와 마지막 작업이 되고 말았죠.”(성언) “요즘에도 다시 읽곤 하는데 재미있더라고요. 어렸을 땐 이 장면이 좋았는데 커서는 또 다른 장면이 좋아지고 그래요. 아버지 작품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성우)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분실된 원고가 많아 안타깝다. 신문 연재 스크랩도 100% 남아 있는 게 없다. 아버지가 활발히 붓을 들던 당시 여건이 어려웠던 점은 알고 있지만 없어진 페이지를 보면 가슴이 허전하다. 그래도 가끔 연락을 주며 격려해주는 아버지 지인들 때문에 힘이 난다.
●박수동·신문수·이정문 화백 등이 적극 도와
이번 전시회에도 당신 생전 낚시를 함께 즐겼던 박수동 신문수 이정문 허어 이두호 윤승운 화백 등 심수회 멤버와 허영만 이현세 화백이 글과 그림으로 힘을 보탠다.‘심술통’으로 유명한 이정문 작가는 고 화백이 자신의 집에 찾아와 벽지에 일필휘지로 그렸던 관우 그림을 내놓기도 했다.
고 화백이 쓰던 책상을 옮겨놓으며 작업실을 재연하고, 생전 모습을 여러 원고와 사진으로 준비하고, 오리지널 원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도록으로 꾸미고, 또 그림 따라 그리기 이벤트를 준비하는 등 추모제를 즐겁게 만들기 위해 분주하다. 그래도 열혈 팬들을 생각하면 빈틈이 있어 보일 것 같다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처음이다 보니 허점이 있어 혼날 것도 같아요. 귀엽고 재미있게 봐주시면 아버지도 하늘나라에서 기뻐하시지 않을까 싶어요.”(성언)
“아버지 작품은 역사적 유물이라고 여겨집니다. 그대로 사장시킬 순 없죠. 추모제 즈음 ‘오백년’‘연산군’‘서유기’ 등을 내는 등 복간 작업도 꾸준히 해나갈 생각입니다. 언젠가 ‘고우영 박물관’을 만드는 게 평생의 꿈입니다.”(성우)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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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우영 화백의 작품을 만난 것은 국민학교 초반이었던 것같습니다.장소는 불경스럽게도 '화장실'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모네집이 같은 동네에 있었습니다.누나 3명도 있었지만 이모네 형들 2명을 많이 쫓아다녔죠.이모네에 자주 놀러가기도 하고.어느날 화장실을 갔는데
좌변기 뒤에 만화책이 놓여있었죠.바로 고 화백의 삼국지였습니다.볼일 보러 들어갔다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죽 읽어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어린이용으로 5권짜리로 압축돼 나온 것이었는데 정말 재미있었죠.이후론 기회가 닿을 때마다 고 화백의 작품을 찾아 읽었습니다.
여러 작품을 섭렵하고 즐거웠지만 삼국지가 최고 였던 것 같습니다.
30~40대 인 분들은 지금도 삼국지 주인공을 떠올리라 치면 고 화백이 그렸던 유비 관우 장비 조조 등 캐릭터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 입니다.
지금은 고 화백 작품처럼 해학이 넘치는 작품을 만나기 힘들어 아쉽습니다. 추모제를 준비하던 두 아드님의 모습도 눈에 선하네요.두 아드님의 소망인 '고우영 박물관' 건립이 이뤄지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기사에도 잠깐 썼지만 이정문 화백과의 이야기가 재미있었습니다.추모제 준비를 하고 있던 두 아드님의 사무실(일산에 있었음)을 찾아갔는데 방안을 가득 채운 만화 책들도 책들이었지만 웬지 모르게 허름해 보이는 커다란 그림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고 화백님은 이정문 화백님 등 여러 친구분들과 심수회라는 낚시 모임을 하며 절친하게 지냈다고 합니다.어느 날 고 화백님이 이 화백님 집에 놀러갔다가 소주가 왔다갔다했고, 얼큰하게 술 기운이 오른 고 화백님은 펜을 꺼내 이 화백님 집 벽지에 일필휘지로 관우를 그렸다고 합니다.
이 화백님은 그림이 너무 아까워 집이 이사갈 때 벽지를 그대로 오려내 이 그림을 간직했다고 합니다.제가 개인적으로 고우영 화백님을 만난 적이 없지만 잠시 눈을 감으면 그 때 벽지에 관우를 그리고 씨익하고 웃는 고 화백님의 모습이 떠오를 것 같네요.풍류라고나 할까요?
이 그림은 고 화백 1주기 때 전시됐습니다.
요즘 삶이 팍팍합니다. 건조하기도 하죠.좀 우울하기도 한 분들이 있다면 한 번 고 화백님의
작품을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잠시나마 웃으며 고단함을 잊을 수 있을테니까요.
하늘나라에서도 여전히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실 고 화백님의 생각하며 글을 맺겠습니다.
참고로 이정문 화백님을 잘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이 화백 님이 즐겨 그리던 캐릭터를 하나 싣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