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메시지 여전히 유효...우리 사회 또다른 한수 위해 연기하고파"
어쩌다 보니 1980년대 분위기가 서서히 흐려져 가는 1990년대 중후반 대학을 다녔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자 마자 동아리 선배들 손에 이끌려 노이즈 잔뜩 낀 비디오 테이프로 보았던 영화 '파업전야'입니다. 영화 동아리였는데요, 국내외 작품을 가리 않았었는데 당시 보았던 여러 작품 중에 선명한 기억을 남긴 작품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정부의 압박에 밀려 극장 개봉을 하지 못했다가 5월 1일 개봉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어벤져스 엔드 게임 처럼 어느 극장에 가든 스크린이 시간대별로 준비되어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발품을 팔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영화 수익금은 영화 청년 학도 지원금으로 쓰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
“최근 가슴 아픈 산재 사고들이 많았잖아요.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요. ‘파업전야’에서 다룬 내용들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한국 독립영화의 전설’로 통하는 영화 ‘파업전야’가 다음달 1일 노동절을 맞아 극장 개봉한다. 영화 운동을 하는 청년들이 뭉쳐 노동 현장을 정면으로 다뤘던 이 작품은, 최루탄과 헬기까지 동원한 정부의 갖은 탄압 속에 극장 상영이 막혔으나 대학가 순회 상영으로 30여만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1990년 당시 기준으로 톱5에 드는 흥행 성적이다. ‘파업전야’는 4K 디지털 및 음향·녹음 보강 작업을 거쳐 새로 태어나 지난해 말 독립영화제에서 관객과 만났고, 첫 극장 개봉까지 이어졌다.
1990년 초중반 대학을 다녔던 세대의 뇌리에는 몽키스패너를 번쩍 치켜든 깡마른 청년 노동자 한수를 클로즈업한 엔딩 장면과 뒤이어 흐르는 안치환의 주제가 ‘철의 노동자’가 강하게 남아 있다. 이제 얼굴과 몸매에 직선보다 곡선이 많아진 ‘중년의 한수’ 김동범(53)씨를 만났다. “지난해 작업 때 감독님들을 오랜 만에 만났는데 저를 못아라보더라고요. ‘형, 저에요. 한수’라고 했더니 깜짝 놀랐죠. 중학교, 고등학교 두 딸들도 영화 포스터를 보고는 이런 아빠 어디 갔냐고, 다시 돌아가라고 하던데요. 하하하.”
그가 연기한 한수는 홀어머니 밑에서 동생을 공부시키느라 일찌감치 학업을 접고 공장 일을 하는 청년이다. 빠듯한 살림살이에, 반장 승진 유혹에 민주노조를 세우려는 동료들을 애써 외면하며 철야와 잔업을 반복한다. 그러나 사측의 폭력에 동료들이 하나 둘 쓰러져 나가자 결국 투쟁의 선봉에 서게 된다.
어려서 세종문화회관 별관에서 접한 어린이 뮤지컬 때문에 무대를 동경하게 됐다. 그래서 대학 시절에도 전공인 경영학보다 연극 동아리 활동에 흠뻑 빠졌고, 4학년 때 이웃 영화 동아리 선배 덕택에 ‘파업전야’와 연결됐다. “저는 못생긴 배우로 통했어요. 단역 정도 하겠구나 싶었는데 주연이라는 거에요. 첫 영화라 잘해낼 수 있을지 두려움이 컸습니다.”
1989년 말 인천 부평의 한 폐업 공장에서 2주간 촬영하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고 했다. 실제 파업 중인 노동자들과 함께 불꺼진 공장에 전기를 연결해가며 영화를 찍었다. 노동자들은 단역으로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저도 그랬지만 처음부터 모두가 치열한 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친구를 돕는다는 생각에, 영화 해보려는 욕심에 함께한 경우도 있었지요. 하지만 촬영 막바지 한수가 공장 선배와 술잔을 나누며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 하는 장면을 찍으면서 배우와 스태프 모두 눈물을 흘리며 하나가 됐죠.”
‘파업전야’ 덕택에 또래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얼굴을 알아봐 ‘운동권 아이돌’이라는 우스갯 소리를 들을 정도였지만 연기자의 삶은 길게 가지 못했다. 대학 졸업 뒤 고 박광정, 추상미 등과 극단을 만들어 대학로 무대에 섰다. 송강호, 김윤석 등과 연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극단은 경영난에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딱 2년 정도만 돈을 벌어야 겠다고 마음 먹고 학원 일에 뛰어들었는 데 세월은 20년가까이 속절없이 흘렀다. 이따금 목마름을 느끼며 후배들의 연극을 지원하곤 했다. 2013년 즈음 갈증이 극에 달했을 때 대학 동문 연극회를 통해 무대와의 인연을 비로소 되살렸다.
그는 우리 사회 또 다른 한수들을 위한 연기를 하는 게 꿈이다. 현재 문화창작집단 ‘날’에서 고문과 제작PD를 맡고 있는 그는 2014년 백혈병에 걸린 반도체 공장 노동자 이야기를 그린 연극 ‘반도체 소녀’에 출연했다. 올 연말에도 사회를 풍자하는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영화 오디션에도 도전하고 있다.
“‘파업전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결국 그렇게 할 수 없더라고요. 열정이 부족해, 한편으로는 비겁해 물러선 적이 많았지만 이젠 앞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우리 사회 또 다른 한수들의 이야기를 제 방식으로, 소박한 몸짓으로 풀어내고 싶어요.”
icar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