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문에도 등장하는 비인기 종목의 비애
올림픽 때문에 체육부로 파견 가야할 것 같은데...
상황도 그러하니 한번 올려봅니다.
스포츠 종목마다 ‘황제’가 있다.골프하면 타이거 우즈를,테니스하면 로저 페더러를,농구하면 마이클 조던을 꼽는다.
우리에게도 세계무대를 주름 잡았던 황제가 있었다.배드민턴 종목에서다.이 종목 개인 최다인 국제대회 71회 우승,세계선수권 7회 우승으로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셔틀콕의 황제’ 박주봉이다.배드민턴이 인기가 있는 동남아에서는 한 때 그의 이름을 딴 햄버거나 아이스크림,주스가 나올 정도였다.적어도 동남아에서는 우즈나 조던도 박주봉의 명성을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그는 살아 있는 신화다.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끝으로 현역을 떠났지만 이후 영국,말레이시아,일본 국가대표 코치 등을 맡을 때마다 현지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뜬금없이 박주봉 이야기를 꺼낸 것은 최근 한 판결문에서 그의 이름을 봤기 때문이다.‘주봉’이라는 상표를 둘러싸고 배드민턴 용품업체와 박주봉 사이에 벌어진 분쟁에 대한 것이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특허법원은 배드민턴 용품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우리나라 스포츠계에서 배드민턴은 비교적 비인기 종목에 속하는 점,일반적으로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의 경우 전성기가 짧고 세대교체가 빠른 점,이 사건 등록상표가 박주봉의 주지성이 가장 높았던 선수생활에서 은퇴한 뒤 약 10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출원된 점 등을 고려할 때 박주봉이라는 이름이 비록 배드민턴 분야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고 해도 등록상표의 출원일 무렵에 ‘박주봉’ 또는 그 약칭인 ‘주봉’은 다른 사람이 상표등록을 하지 못하게 할 정도의 저명성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배드민턴이 국내에서 비인기 종목에 속한다는 문구가 특히 가슴을 찌른다. 배드민턴은 1992년 바르셀로나 대회부터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됐고,1996년 애틀랜타 대회 때 혼합복식이 추가돼 금메달 5개가 걸려 있는 종목이다.우리나라는 2000년 시드니 대회를 제외하곤 매번 금빛 셔틀콕을 날렸다.그동안 4차례 대회에서 금메달 5개,은메달 5개,동메달 3개를 따냈다.양궁만큼은 아니어도 국위 선양을 위해 한몫 하고 있는 종목인 셈이다.하지만 메달의 환희도 잠시.평소에는 프로종목,해외 스포츠 등에 밀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톡톡히 겪곤 한다. 박주봉도 언젠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금메달을 딴 직후 반짝 뜨지만,몇 개월 지나면 냉랭해진다.”고 토로한 바 있다.
비인기 종목의 설움은 배드민턴만 겪는 것은 아니다.올해 초 화제의 영화였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핸드볼의 아픔을 진하게 그려낸 바 있다.한국 핸드볼은 척박한 토양에서 세계 톱클래스의 실력을 일궈냈다.남자 핸드볼의 윤경신 같은 경우는 최고 핸드볼 리그로 꼽히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12년 동안 뛰며 7차례나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했다.해외에선 우리나라의 실력을 알아주지만 국내 대회에서 선수들은 빈 관중석을 놓고 경기를 치른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국민의 심금을 울리는 사투 끝에 아쉽게 은메달에 그친 한국 여자핸드볼대표팀 선수들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금메달을 놓친 게 안타까워서가 아니었다.당시 한 선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무관심으로 돌아설 국민들의 차가운 눈초리가 두렵다.”고 말했다.
올림픽이 다시 다가왔다.올림픽은 스포츠 선수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내는 축제의 장이다.모든 선수들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박수를 쳐야할 때다.하지만 그 박수가 금방 잦아들지 않고 오래 지속됐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