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한다는 것은 잔혹한 일이다
음악 그리고 :
2007. 3. 30. 14:17
홍대에 자주 간다.
최근 1년 사이 일주일에 적어도 1번 이상은 홍대를 가는 것 같다.
내가 홍대에 자주 가는 이유는
주로 술이다. --;;
우연한 기회에 인터뷰했던 양반과 죽이 맞았다.
블랙신드롬의 기타리스트 (김)재만이 형이다.
1980년 대 백두산 블랙홀 블랙신드롬 등등 한창 날렸었다.
지금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꾸준히 활동을 하고 있다.
홍대에서 까미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녹음도 하고
레코딩엔지니어링 강의도 한다.얼마전부터는 대학에도 출강하고 있다.
술...무진장 먹는다.
형은 레코딩 강의 때문에 밤 10시,11시에 일이 끝나고
난 요즘 농구 때문에 밤일을 하다보면 대충 11시~12시 사이에 도킹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끔은 해뜰때까지도 먹는다.언젠가는 오후 7시 무렵 만나 다음날 오후 7시가 넘어서야
헤어진 경우도 있었다.물론 그사이 스트레이트로 술을 먹은 것은 아니다.
블랙신드롬의 현재 라인업은
김재만(기타) 박영철(보컬) 박영길(베이스) 히데키 모리우치(드럼)이다.
재만이 형과 영철이 형이 원년 멤버고 재만이 형이 쭈욱 자리를 지켰고,
영철이 형은 잠시 나갔다 왔고,최근 들어 영길 형과 닌자 형이 가입했다.
닌자는 일본 드러머 형님의 별명이다.
재만 형과 처음 만나던 날
엊그제도 봤었는데 일본에서 닌자형이 온다고 좋아하고 있었다.이 양반들이 모이면
그야말로 말술이 아니라 코끼리술 또는 맘모스 술이다.--;;
각설하고
재만이 형을 만나다보면 언더에서 뛰는 뮤지션들을 만나게 된다.그 중에서도 한가지
가슴 아픈 일이 떠오른다.그 일이 떠오른 것은 어느날 버스를 타고 시내를 지나가다
모 뮤직 페스티벌 포스터를 봤기 때문이다.'아,저거 올해 또 하는 군.'하는 생각이 스치며
마음 저렸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지난해 여름 모처에서 열린 그 뮤직페스티벌에 간 적이 있다.
한국 최대 록페스티벌이라는 그곳..스테이지가 한 3개 정도였던 기억이다.
엄청 비가 온 뒤라 발목까지 빠지는 진흙 투성이의 그곳에서 흥얼흥얼 거렸다.
역시 외국 뮤지션들이 서는 메인 무대에 사람이 쏠렸다.
대다수 국내 뮤지션이 나오는 곳은 그다지...
9시나 10시가 되서야 공연장을 벗어난 것 같다.그리곤 다시 술자리...--;;
나중에 그날 그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밴드 멤버가 합석을 했다.
팔을 걷어부치고 술잔을 받는데 팔뚝에 3일 입장권이 예닐곱개 달려 있었다.
당시 공연은 1일권,2일권,3일권으로 나눠져 있는데 팔목에 찰 수 있는
고무 밴드 모양의 입장권이었다. 가격으로 따지면 100만원는 족히 넘는 것처럼 보였다.
속으로 '우아~'했는데,그 다음 말을 듣고 그게 출연료라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날 뻔했다.
해외 뮤지션들은 거금을 주고 데려왔는데 정작 공연을 감칠 맛 나게 해주는 국내 언더 밴드
에게는 현금이 아니라 그냥 표를 여러개 주며 때웠던 것이다.
그 뒤로는 국내 뮤직페스티벌이라고 하면 조금 꺼림직하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야
해외 뮤지션이건 국내 뮤지션이건 음악만 들으면 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국내 뮤지션들의 피눈물이 베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올해도 수많은 뮤직 페스티벌이 국내에서 열릴 것 같다.모두 다 똑같은 것은 아니겠지만
그 때를 생각하며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나도 내 돈 내고 가는 경우가 많지 않지만 국내 라이브 공연 많이 가줘야 한다.
특히 언더가 더욱 그렇다.공연장 한 번 가보고 음반 하나 살 때마다 정말 큰 힘이 된다.
언더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