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 땅콩 김미현의 선행 그리고 버지니아,조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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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5. 11. 11:52
11일 미켈라울트롭 1라운드 16번홀에서 버디를 낚고 있는 김미현.사진 제공 KTF
슈퍼 땅콩 김미현이 2주째 샷 감각이 좋은 것 같습니다.지난주 셈 대회 역전 우승을 했고,오늘 아침 미켈라울트라오픈 1라운드가 끝났는데 무보기 7언더로 2위를 달렸습니다.1위는 역시 한국 선수인 이정연으로 8언더파네요.
지난주 김미현의 우승 소식은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온 일이었습니다.한국 여자 선수 시즌 첫승이었죠.당시 미국에서는 토네이도가 몰아닥친 뒤였는데 김미현은 우승하고나서 10만달러의 성금을 쾌척했습니다.국내 언론들은 잘했다 김미현 ! 하고 호들갑을 떨었죠.
미국 현지에서는 어떤 반응이었을까요?
다음은 골프뉴스 에이전시인 JNA 최민석 기자가 보내온 글입니다.최 기자는 미국 현지에서 주로 LPGA를 취재하고 있습니다.2004년 하와이에서 만났었죠.국내 골프 담당기자들이
웬만해선 미국 현장에 자주 못가기 때문에 최 기자가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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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LPGA투어 미켈롭울트라오픈이 벌어지고 있는 버지니아 주.얼마 전 우리에게 가슴아픈 조승희의 소식을 전해 준 곳이다.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슈퍼마켓에 가도 스스로 조심할 만큼 이 곳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하지만 이런 냉랭한 분위기는 키 160cm의 작은 골프선수에 의해 조금씩 풀리고 있다.
그렇다.김미현 프로의 기부 이야기이다.이미 한국에 어느 정도 알려진 이야기이고,미국에서도 며칠 전 보도된 뉴스이다.LPGA투어 입장에서도 작은 미담에 불과한 이야기였지만 이곳 사람들에겐 제법 훈훈한 소식이었나보다.
1라운드가 진행되고 있는 킹스밀리조트 리버코스.김미현 프로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 몇 홀을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한 젊은 미국남성이 내게 다가와 김미현 프로와 어떤 사이인지를 묻는다.취재하는 기자라는 대답에 한국인임을 확인하는 질문을 건넨다.
솔직히 지금 시점의 버지니아에서 한국인임을 묻는 질문은 썩 달갑지 않다.바로 엊그제 슈퍼마켓에서 본 신문 1면에 조승희의 사진이 게재된 것을 본 탓이었으리라.
“맞다.난 한국에서 온 기자다.”
그 미국인의 표정이 환하게 바뀐다.
“얼마 전 ESPN.com에서 김미현에 관한 투표 결과를 보았다”며 그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사실 이런 류의 질문이 가장 싫다- 물었다.모른다는 대답에 김미현이 매주 ESPN.com을 통해 하는 ‘그 주의 플레이어’ 투표에서 일등을 했다며 귀띔해 줬다.테니스 스타인 안드레 아가시와 미국의 유명한 풋볼 선수를 제치고 일등을 했다고 대단한 것인양 얘기를 했다.
속으로는 그러려니 하고 자리를 피하고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김미현의 1등 얘기를 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조금 더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먹고 이름을 물었다.
자신을 벤 레드펀(Ben Redfern,26)이라고 밝힌 이 사람은 김미현이 1위를 한 이유가 바로 우승 직후 한 기부 때문인 것 같다며,김미현이 기부를 한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사실 지난 주 골프계의 뉴스는 타이거 우즈의 와코비아챔피언십 우승,그리고 그 대회 프로암에서 타이거 우즈와 마이클 조던이 한 조로 플레이한 것이라고 했다-물론 나도 동감한다.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뒤집고 골프에서 김미현의 이야기가 부각된 것은 선행 때문이라며 나름대로 분석을 한다.
“김미현이 캔사스주의 토네이도 피해를 위해 기부한 10만 달러의 기부금은 타이거 우즈도 하지 못한 대단한 일이었다.이 사실에 큰 감동을 받았고,아마 많은 미국 사람들이 김미현에게 감사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벤의 이 이야기를 듣고 버지니아에서 주눅들어있던 내 마음이 갑자기 우쭐해졌다.갑자기 김미현 프로와 같은 한국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기까지 했다.한껏 기분이 좋아진 나는 벤에게 그렇게 생각해서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이 이야기를 꼭 김미현 프로에게 전해주겠다 약속했다.
한국 사람에게 기부 문화는 익숙하지 않다.많은 한국 선수들이 미국에 건너와 돈만 벌고 간다는 비판이 이는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이번 김미현 프로의 선행이 미국인에게 한국 선수,나아가 한국인에 대한 인식을 조금이나마 바꾼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더 많은 한국 선수들이 미국에서 활약하기 위해선 이런 미국의 문화에 동참해야 한다.그들의 파이를 우리가 빼앗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하고 즐긴다는 생각을 갖도록 말이다.
프로 운동선수니까 운동만 잘 하면 된다고? 천만의 말씀.이젠 주위도 잘 살펴야 진정한 운동선수로 대접받는다.
11일 미켈롭울트라오픈 1라운드를 끝내고 갤러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김미현.사진 제공 KT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