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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4.29 도대체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기생수 by 미아리홍

 

우주에서 아메바 같은 것들이 내려와 사람의 몸속에 침투한다. 그리고 그 사람을 그대로 복제해 대신 행세한다. 사람들은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신이 알던 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사투가 시작한다. 
할리우드 SF의 고전 '신체강탈자의 침입'(1953/한국 제목 외계의 침입자)의 이야기는 이렇다. 냉전시대 공산주의에 대한 서방의 두려움이 담겨 있다는 원작도 원작이지만, 1978년 필립 카우프만 감독이 리메이크한 '신체강탈자의 침입'(한국 제목 우주의 침입자)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을 것 같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돈 시겔 감독의 1953년작은 70년가까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밋밋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1978년판은 지금 봐도 쫄깃하다. 도널드 서덜랜드(키퍼 서덜랜드의 아버지)가 괴성을 쏟아내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주인공에 감정 이입한 관객들의 다리에 힘이 탁 풀리게 하는 명장면이다. 쇼킹한 마지막 장면으로 '유주얼 서스펙트'를 꼽는 분들이 많지만 난 '신체강탈자의 침입'이다.  2위는 '오멘'이다.
1993년 아벨 파라라 감독은 '바디 스내쳐'라는 제목으로 이 이야기를 변주한다. 군 부대와 기지에 주둔하는 가족들이 중심이라 액션이 많이 보태졌다. 2007년에도 니콜 키드만을 주연으로 한 '인베이전'이라는 작품이 나온다. 막 007 제임스 본드로 변신했을 즈음의 다니엘 크레이그가 함께한다. 모두 이야기의 큰 줄기는 같다.

 TV 애니메이션 '기생수'(바로보기)를 이야기 하기 위해 좀 돌아왔다. 역시 비슷한 이야기 뼈대를 갖고 있다. 여기에 일본 특유의 그로테스크와 작가 특유의 철학이 버무려 지며 만화 애니메이션 팬 사이에서는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다. 

 

'기생수'는 원래 이와아키 히토시 작가가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연재한 만화다.  단행본으로 1000만부 이상 팔려나갔다니 말 다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치고는 영상으로 옮겨지는 게 상당히 늦었다는 점이다. 머리가 쫙 갈라지며 사람을 잡아 먹는 그런 장면들을 재현하기에는 과거 기술력이 뒷받침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실사 영화는 그렇다치고 애니는 왜 늦었을까? 여튼 영화는 일본 개봉 당시 '인터스텔라'를 꺾을 정도로 인기가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인기 만화는 대개 연재 중 TV 시리즈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고, 장난감이 나오고, 그리고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실사 영화나 실사 드라마도 만들어진다.  이러한 사이클을 무한 반복하며 하나의 작품으로 다양한 미디어 믹스를 이어가는 게 특징인데 '기생수'는 연재 종료 뒤 TV 애니메이션화가 20년가량 흘러 2014년에야 이루어졌다.  두 편으로 구성된 실사영화도 2014년 처음 공개됐다. 

TV 애니메이션 '기생수'는 약간 뒤의 이야기를 앞으로 가져오며 가끔 플래시백을 쓰기도 하지만 대체로 원작의 이야기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 어느날 하늘에서 정체불명의 생명체들이 내려 앉는다. 자그마한 생명체는 사람 몸을 파고들어 뇌가 있는 머리 부위를 대체하고는 사람 몸을 조종한다. 머리를 자유자재로 변형하는 것은 기본. 

엄마, 아빠와 단란하게 살고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 신이치도 이 생명체를 맞닥뜨린다. 그러나 이 소년은 오른팔을 파고들어 점점 올라오는 이 생명체를 보고는 전선으로 팔을 묶어 꽁꽁 묶어 막는다. 다음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른팔은 이미 자신의 오른팔이 아니게 됐다. 신이치의 오른팔은 자기의 의지를 갖고 자유자재로 늘어나고 줄어들고 여러가지로 모양을 바꿀 수 있고 심지어 말도 배우고 인간 사회에 대해서도 스스로 학습힌다. 신이치는 자신의 오른팔에 오른쪽이라고 이름을 붙여주고(사실 이름도 오른쪽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공존을 시작한다.

문제는 이 생명체들이 자신이 기생하게 된 종에 대한 포식 본능이 있다는 것이다.  개의 머리를 대체했다면 다른 개들을 잡아먹고, 인간의 머리를 대체했다면 인간을 잡아 먹는 식이다. 이때문에 일본 이곳저곳에서는 일명 '묵사발 살인'이 거듭되며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다. 신이치에게 자리잡은 오른쪽이는 머리가 아닌 팔에 머무르게 되며 이러한 포식 본능은 없다. 단순히 이러한 괴생명체와 잔혹하게 싸우는 내용으로만 흐러간다면 '기생수'가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작가는 인간의 시선에서 본 기생수의 모습과 기생수의 시선에서 본 인간의 모습을교차시키며 은근히 존재, 그리고 존재의 이유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기생수들이 단순히 포악한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일부는 스스로 존재에 대해 고민하고 인간 사회에 녹아들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신이치도 큰 사건을 겪으며 원래의 자신과는 조금은 다른, 오른쪽이와 공존을 넘어 제3의 존재로 조금씩 변화한다.

원작의 팬들이라면 애니메이션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지점이 있을 수 있는 데 바로 그림체다. 캐릭터들이 원작의 특징들을 가져오기는 하지만 그림체가 좀 다르다. 애니는 다소 우라사와 나오키 류의 느낌이 묻어난다. 

 세월이 상당히 흘러 미디어믹스가 돼다보니 원작과 필연적으로 달라지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어 원작에서 주인공 신이치의 아버지는 늘 신문을 보곤하는데(그렇게 기억된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태블릿을 통해 신문을 보는 식이다.

강추 애니메이션인데, 잔혹하다 그래서 19금이다. 성인인증을 받아야 한다!


본 원고는 POOQ 리뷰단 활동의 일환으로 '콘텐츠연합플랫폼'으로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받고 작성하였습니다.

 

 

 

 

Posted by 미아리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