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세월호 5주기 함께 하는 영화 '생일'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생일'은 세월호에 관한 영화입니다. DC계열 슈퍼 히어로 영화 '샤잠!' 과 같은 날 개봉했습니다. 샤잠에게 밀려 박스 오피스 2위를 달리다가 개봉 6일째인 지난 8일 월요일 흥행 1위에 올랐고, 열흘가까이 1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극장 비수기라서 그런지 누적 관객은 아직 100만 명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15일까지 79만 여명이 관람했습니다. 100만명은 19일 이나 20일 쯤 달성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거운 주제를 다룬 작품이지만 조금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영화를 연출한 감독님 인터뷰를 올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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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도 세월호는 지워지지 않은 상처입니다. 영화를 통해 유가족들을, 저를, 우리 모두를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허리를 다쳐 병원 신세를 지다가 집으로 돌아와 누워지낼 때다. 아침에 뉴스를 보려고 TV를 틀었다가 몇 날 며칠을 끄지 못했다. TV를 켜놓은 채 잠이 들곤 했다. 팽목항에 가서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렬했다. 건강이 안좋았던 터라 가족이 반대했다. 이듬해 여름에야 안산에 갔다. 한 치유공간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유가족들을 마주했다. 그 해 가을 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영화 ‘생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간 세월호를 다룬 독립 다큐멘터리들은 여럿 있었다. 상업영화에서도 작품의 일부 설정이나 장치, 배경으로 다뤄진 경우가 이따금 있었다. 오롯하게 세월호와 마주한 장편 상업영화는 ‘생일’이 처음이다. 어느 정도 자본이 투자되고 수 백개 스크린에서 상영되는 상업영화 틀에서 세월호를 담아내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종언(45) 감독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아니라 마음을 보듬고 위로를 건네는 이야기에요. 이런 이야기는 언제 어떻게든 해도 괜찮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고 했다.
영화는 소중한 가족을 잃은 뒤 삶을 살아가고, 살아내는 유가족들의 일상을 다룬다. 떠나간 아이들에 대한 기억을 나누는 실제 생일 모임이 모티브가 됐다. 이 감독은 영화를 찍는 내내 ‘한 걸음 물러서서 있는 그대로를 옮겨 담으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원래 작품에 만든 사람의 시선이나 재능이 담기기 마련인데, 그런 것들은 뒤로 물리고 적절한 공간에 인물들만 보이게 하는 게 옳을 것 같았어요. 배우도 배우 자신으로 존재감이 도드라지지 않기를 원했고, 카메라 앵글도 멋지게 잡기 보다는 사람이 사람을 보는 앵글을, 음악도 너무 들리기 보다 캐릭터 감정을 느끼게 돕는 정도로 요청했지요.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예술적 재능을 절제하라고 요구하는 게 미안한 일일 수 있는데, 모두들 흔쾌히 동의했어요. 전도연 배우도 촬영 전 자신이 조금 과하거나 캐릭터가 아닌 전도연으로 느껴지면 이야기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마음이 모여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감히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도, 할 수도 없었지요. 공간적으로 떨어져서, 시간적으로 점점 지나가서 세월호와 멀어지게 되는 보통의 관객들이 세월호 유가족의 일상을 낱낱이 마주하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봤습니다. 유가족이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영화를 같이 본다면 유가족은 물론, 관객 자신에게도 위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지요.”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을 때, 그리고 완성했을 때 유가족들은 어떤 반응이었을까. “글 쓰기 전부터 말씀을 드렸더니 인터뷰에 흔쾌히 시간을 내주셨죠. 배우들의 출연이 구체화 됐을 즈음 4.16가족협의회를 찾아가 본격적인 영화화를 알렸어요. '힘내서 잘하라'고 응원 받았습니다. 영화를 완성해 처음 보여드릴 때는 많이 긴장했지요. ‘아이를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을 잘 표현해줘 고맙다’는 말씀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마음이 놓였습니다.”
'생일'이 입봉작인 이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연출부 출신이다. '밀양', '시' 등을 함께했다. 이번 작품은 투자, 배급, 캐스팅 등까지 신인 감독에게 쉽지 않은 과제였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이야기 했다. "상업 영화의 틀 안에 이런 주제를 가져왔으니 제작자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있을 수 있는데 험난하지는 않았어요. 모두 세 분이 제작자로 나서주셨어요. 그 중 한 분이 나우필름의 이준동 대표님이세요. 처음 글(시나리오)를 보내드렸을 때 영화인으로서 그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어 부채의식이 있었는데 '생일'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좋고 고맙다고 말씀해주셨죠. 이창동 감독님도 제작자 중 한 분이세요. 이 감독님은 당시 '버닝'을 작업 중이셨지만 촬영을 앞둔 저에게 초심을 잃지 말라고 격려해주셨죠. 또 영화가 완성된 뒤에는 '영화가 소박하고 정직하게 만들어진 것 같다'고 평가해주셨어요. '생일'은 정말 제작자 , 투자자, 그리고 배우와 스태프 등이 자기 마음을 보태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봅니다."
‘생일’은 피해자, 유가족은 어떠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깨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 감독은 고맙다고 했다. “유가족들이 힘들어 하는 것 중 하나가 눈물을 흘리면 아직도 힘들어 하냐고 하고, 잠시 미소가 스치기라도 하면 웃는다고 안좋은 이야기를 들을 때에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 그렇게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 어머니들이 많았죠.”
너무 가슴이 아플 것 같아 차마 보지 못하겠다는 관객들도 적지 않다.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화면에 그 배가, 과거 행복했던 한 때가, 낯익은 얼굴들이 나올까봐 겁이 난다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은 그날을 직접 조명하지는 않고 2년이 지난 시점을 살아내고 있는 남은 가족들을 이야기해요. 너무 겁내하지, 주저하지 않으셔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사회는 지난 5년간 조금이라도 달라졌을까. “(이번 강원도 산불을 보면) 규모에 비해 피해가 적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대응하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조금은 바뀌었나 싶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고 피해를 입은 분들의 상실감은 더없이 클 텐데 그런 마음을 어떻게든 계속 보듬었으면 좋겠습니다.”
제대로 된 진상 규명에 대한 목소리가 여전하다. “남아 있는 분들이 충분하다고 느낄 때까지 진상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는 것이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지고 고통을 덜어내는 일이라고 봅니다. 밝혀지지 않은 게 있다면 당연히 밝혀져야죠.”
앞으로 우리는 세월호는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 “우리 모두가 상처를 입었지만 유가족들의 상처가 가장 크고 깊죠. ‘아직도’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있기도 한데, 그분들을 외롭게 하는 말인 것 같아요. 유가족이 하려는 일, 바라는 일을 같이 함께 바라보고 공감하는 게 유가족들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세월호는 그렇게 간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4년은 '생일'과 함께 시간이 멈춰 있었다는 이종언 감독. 마흔 중반에 늦깎이 데뷔한 그의 앞날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 안에 이런 저런 생각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생일'에 마음과 에너지를 쓰고 있어서 글로 표현하거나 그러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으면 정말 감사한 일이죠. 앞으로도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아요. 시가 소설이 그림이 아름다운 것은 자기 방식으로 위안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에요. 위로를 받는 사람이 많고 적음을 떠나 사람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 보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는 해요. 이창동 감독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시'의 대사로 나오는 데요, 이야기는 찾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것라고요. 저도 곧 만나겠죠."
글·사진 icarus@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