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THEN

토지,오세영 화백 그리고 황당했던 기억

미아리홍 2007. 3. 28. 17:10

휴대폰이라는 게 참 편리하다. 귀찮기도 하지만 쏠쏠할 때가 있다.
예전 삐삐를 갖고 다니던게 10년 조금 전인 것을 생각하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혀를 차게 된다.
휴대폰의 장점은 간편한 통화보다 뭐니뭐니해도 문자인 것 같다.
나의 입장에서는 특히 약속을 뭉개버릴 때 문자를 가끔 보낸다.직접 통화를 하면
웬지 난처한 상황이 생길 것도 같고,걍 문자로 날려버리면 그다지 직접 쪽팔릴 일없이
상황을 바꾸게 되니까 말이다.물론 상대방이 문자를 보지 못한 경우는 사태가 커진다.

휴대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직도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지 못한 분이 있어서다.
기실 휴대폰으로 '쏘리~'하고 문자로 보낼 만한 상황은 아니다.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는 희망일뿐.

바로 이분이다.

오세영 화백.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가 만화로 옮겨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를 위해
찾아갔다.2006년 2월쯤이었던 것 같다.경기도 모처 시골이라 찾아가는데 좀 애를 먹었다.
오세영 화백하면,한국적인 정서를 담아내는 것으로 유명하다.그림체를 보면 정말 그렇다.
무엇보다 필이 왔던 것은 공부하는 작가라는 점이다.국내 만화계에 인체 해부학 수업을
도입한 분이기도 하고 한국의 옛 집을 그리기 위해 고건축 공부에 대해 매진,전문가 못지 않은 식견을 가지기도 했다.아무렇지도 않게 접하는 만화 한칸 한칸에 얼마나 많은 땀이 베어있는지 새삼 깨닫게 됐다.


참고로 오세영 화백의 자택 겸 작업실은 다음과 같이 생겼다.


자신의 그림으로 가득찬 천장과 벽


저 위에 사진을 찍기 위해 공을 많이 들였다.의자에 올라가 사진기를 들이대며
이렇게 좀 포즈를 취해주세요.한번 만 더요.조금만 웃어주세요.머리를 조금 들어주시구요.
등등 오세영 화백은 조금은 쑥쓰러워하면서도 인터뷰와 사진 촬영에 친철하게 응해줬다.

인터뷰 기사를 써놓고 출장을 가게됐다.그리고 돌아와서 신문에 실린 기사를 보는 순간
하늘이 노래졌다.오세영 작가를 인터뷰한 것인데 기사 제목은 '만화에 빠진 박경리'로,사진도 박경리 선생의 사진을 덩그렇니 곁들여서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편집되버렸다.

아직도 오세영 화백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이 공간을 빌어 죄송하다는 뜻을 전하고 싶다.언젠가는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