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THEN

뒤늦게 알게된 스트리트 싱어 연영석[version 1.0]

미아리홍 2007. 8. 10. 18:15
사실 저는 민중가요를 좋아합니다. 처절한 또는 피범벅인 노랫말,민중가요에 따르는 팔뚝질

때문에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대학시절 민중가요에 둘러싸여

지내신 분들도 말이죠.애써 귀를 닫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잘 찾아보고 들어보면

정말 아름다운 노래도 많습니다.저 개인적으로는 울컥한 노래들을 좋아합니다.

바로 이 양반이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울컥함을

저에게 던져준 양반입니다.

사진을 찍는다고 포즈를 취해달라고 하자 어색하다며 허허 웃던 영석이형.



 2006년 봄 한국대중음악시상식에 갔었을 때
 
바로 이 양반이 특별상을 받고는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죠. 수상 소감 멘트와

그 노래는 '아 내 심장이 다시 뛰는 구나.'하는 느낌을 갖게 했습니다.

그 노래는 '간절히'라는 노래였습니다.

[이 노래는 이글을 버전 2.0]으로 업그레이드할 때 올려 보겠습니다.

일단 가장 유명했던 노래를 들려드립니다.

코리안 드림

그 다음날로 연락처를 알아네 인터뷰 약속을 잡았죠.

홍대 인근 자그마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연영석씨는 저에겐 그야말로

신선함 그 자체였습니다. 늦깎이로 음악에 입문했던 과정이나

삶을 바라보는 시선,사는 이야기 등등 이야기는 계속 흘렀죠.

스튜디오에서의 만남은 쏘주 자리로 까지 이어졌습니다.

약 2개월 지나서 다른 공연에서 우연히 이 양반을 마주쳤습니다. 그 공연에

왔었던 이 양반이 자신의 게스트 공연을 끝내고 객석에 와서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입니다.지금도 그 어느 곳에서 노래를 하고 있겠죠.

혹시 길을 가시다가 이 양반을 만나면 응원 좀 해주세요..



“사회 어두울수록 더 노래할 것”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 받은 연영석

“끊임없이 창작 욕구를 만들어 주는 어두운 사회에 감사합니다. 사회가 어두울수록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영광스러운 수상 순간에 터져 나온 소감치곤 사뭇 느낌이
다르다.‘노래하는 문화노동자’ 연영석(39)이 최근 열린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던진 말이다. 만장일치로 특별상을 받았다.

대중성보다는 음악성을 중요시하는 이 시상식에서 그가 특별상을 받았던 까닭은
민중가요 30년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확인시켜주는 결과물로 갈채를 받았기 때문.

“아직도 민중가요가 있나?”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연영석의, 어깻죽지를
들썩이게 하는 흥겨운 가락과 사회 구석구석을 향해 외치는 직설적인 노랫말을 접해보라고
하고 싶다. 민중가요의 생생한 들숨과 날숨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조소 전공하다 서른 넘어 민중가요 투신

“음악에 뛰어든 8년의 시간을 이렇게 위로받아서 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미안하기도
하고요. 여러 곳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사회 활동가들의 지친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죠.”

지난 17일 서울 홍익대 근처에서 연영석을 만났다. 집회 현장과 대학 행사가 주된 라이브
무대인 그가 내뱉은 첫 마디는 주위에 대한 미안함이다.

원래 조소를 전공했던 미술학도였고, 대학을 졸업한 뒤 노동미술운동에 뛰어들었다.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3년, 문화예술생산자연합에서 함께 했던 록밴드 메이데이에게
‘전선은 있다’ 등의 가사를 써주면서부터. 당시엔 기타를 칠 줄도 몰랐다. 고단했던
자신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 흥얼거렸던 구절들을 후배들에게 코드를 물어가며, 기타를
배워가며 노래로 완성시켰다. 그렇게 만들었던 ‘라면’ 등을 98년 1집 ‘돼지다이어트’에 담아
내놓으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선 말렸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늦깎이로 음악에 뛰어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영석은 2집 ‘공장’(2001년),3집 ‘숨’(2005년)을 들고 노숙자,
철거민, 해고 노동자, 이주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곁에서 노래 부르기를 이어왔다.

철거민·실업자등 곁에서 노래

그가 뮤지션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늦깎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연주 실력과 빼어난
창작력에도 있으나, 무엇보다 삶에 대한 진정성이 고스란히 노래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거의 밥 같은 느낌이에요. 라이브로 밴드와, 관객과 소통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어요.
 늦게 시작했지만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정말 잘하고 싶어요.”라는 말에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음악은 밥같은 것”… 삶의 진정성 담겨

그는 민중가요 또는 노동가요가 집회 공간에서만 쓰여지는 ‘기능성’ 음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민중이, 대중이 갖고 있는 내면의 감정, 삶의 호흡과 에너지를 울리게 하는 음악이라는 설명.
80∼90년대와는 상황이 달라져 자기와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 과분한 상을 받기도 했지만
 민중가요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다. 자본과 상업 논리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어 작은 것은 존재하기가 힘든 요즘, 주류에서 외면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반영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언젠가 연영석은 노래 부르기를 멈추게 될지 모른다.
물론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없어져야 한다는 점이 전제로 깔려있다.
“제 노래 가운데 많은 부분은 사실 없어져야 해요.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 밝아진다면 말이죠.
언제 그런 날이 올까요?”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기사일자 : 2006-03-21    26 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