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영광스러운 수상 순간에 터져 나온 소감치곤 사뭇 느낌이
다르다.‘노래하는 문화노동자’ 연영석(39)이 최근 열린 제3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던진 말이다. 만장일치로 특별상을 받았다.
대중성보다는 음악성을 중요시하는 이 시상식에서 그가 특별상을 받았던 까닭은
민중가요 30년의 역사성과 현재성을 확인시켜주는 결과물로 갈채를 받았기 때문.
“아직도 민중가요가 있나?”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람이 있다면 연영석의, 어깻죽지를
들썩이게 하는 흥겨운 가락과 사회 구석구석을 향해 외치는 직설적인 노랫말을 접해보라고
하고 싶다. 민중가요의 생생한 들숨과 날숨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조소 전공하다 서른 넘어 민중가요 투신
“음악에 뛰어든 8년의 시간을 이렇게 위로받아서 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미안하기도
하고요. 여러 곳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사회 활동가들의 지친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죠.”
지난 17일 서울 홍익대 근처에서 연영석을 만났다. 집회 현장과 대학 행사가 주된 라이브
무대인 그가 내뱉은 첫 마디는 주위에 대한 미안함이다.
원래 조소를 전공했던 미술학도였고, 대학을 졸업한 뒤 노동미술운동에 뛰어들었다.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3년, 문화예술생산자연합에서 함께 했던 록밴드 메이데이에게
‘전선은 있다’ 등의 가사를 써주면서부터. 당시엔 기타를 칠 줄도 몰랐다. 고단했던
자신의 삶을 위로하기 위해 흥얼거렸던 구절들을 후배들에게 코드를 물어가며, 기타를
배워가며 노래로 완성시켰다. 그렇게 만들었던 ‘라면’ 등을 98년 1집 ‘돼지다이어트’에 담아
내놓으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주변에선 말렸다.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에 늦깎이로 음악에 뛰어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영석은 2집 ‘공장’(2001년),3집 ‘숨’(2005년)을 들고 노숙자,
철거민, 해고 노동자, 이주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곁에서 노래 부르기를 이어왔다.
●철거민·실업자등 곁에서 노래
그가 뮤지션으로 주목받는 이유는 늦깎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연주 실력과 빼어난
창작력에도 있으나, 무엇보다 삶에 대한 진정성이 고스란히 노래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음악은 거의 밥 같은 느낌이에요. 라이브로 밴드와, 관객과 소통하는 것도 너무 재미있어요.
늦게 시작했지만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았죠. 정말 잘하고 싶어요.”라는 말에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는 속내를 읽을 수 있었다.
●“음악은 밥같은 것”… 삶의 진정성 담겨
그는 민중가요 또는 노동가요가 집회 공간에서만 쓰여지는 ‘기능성’ 음악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민중이, 대중이 갖고 있는 내면의 감정, 삶의 호흡과 에너지를 울리게 하는 음악이라는 설명.
80∼90년대와는 상황이 달라져 자기와 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이 과분한 상을 받기도 했지만
민중가요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한다고 했다. 자본과 상업 논리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어 작은 것은 존재하기가 힘든 요즘, 주류에서 외면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반영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언젠가 연영석은 노래 부르기를 멈추게 될지 모른다.
물론 사회의 어두운 그늘이 없어져야 한다는 점이 전제로 깔려있다.
“제 노래 가운데 많은 부분은 사실 없어져야 해요.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 밝아진다면 말이죠.
언제 그런 날이 올까요?”
글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기사일자 : 2006-03-21 26 면